19세기 말 미국은 엄청난 이민자로 인하여 급격히 인구가 증가 하고 있었고 미국 인구조사국은 인구 조사와 그 자료의 집계에 엄청난 고생을 하고 있었다.
1790년 부터 10년 간격으로 전체 인구조사를 진했지만 1880년에 조사 항목이 과거 5개에서 200개 이상으로 늘어났고 이로 인하여 1880년의 인구조사 자료를 집계하는데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더욱 문제는 8년간의 조사 집계가 끝나자 마자 1890년도 인구조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그동안 증가된 인구를 감안하면 금번의 조사는 10년이 넘게 걸릴것으로 예상되었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상금을 걸고 아이디어를 전국에 공모하게 되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게된 이유은 조사된 자료를 모두 일일이 세고 적는 방식으로 집계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워시턴 의 한 인구조사국에서 일하고 있던 ( 홀러리스는 단순히 숫자만 세는 단순인구 조사원으로 일했다) 허만홀러리스는 당시 기차표에 구멍을 뚫어 탑승여부를 파악하는 방식에서 영감을 얻어 마닐라지 카드에 구멍을 뚫어 정보를 카드를 집계하고 정렬하는 방식의 "홀러리스 기계"를 발명하고 특허를 받았다.
당연히 홀러리스는 이 아이디어를 통해 거액의 상금도 받았다.
홀러리스의 기계를 이용한 방식으로 1880년 5,019만의 인구조사를 하기 위해 8년의 조사 기간이 1890년 6,262만명의 조사에 2년6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것이 천공카드 시스템 (PCS : Punched Card System ) 의 시작이다.
재미있는 애기는 당시 홀러리스의 특허에 대해 "이러한 시스템은 정부 말고는 다른곳에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테니 , 큰 돈을 벌지는 못할것같다" 는 기사의 평가가 있었다.
그 예측과 달리 홀러리스는 1896년 태뷸러이팅 머신 컴퍼니란 이름의 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천공카드와 태뷸러이터를 만들었고 이를 년 1,000$ 기계를 기업과 관청에 임대 하는 방식으로 큰 돈을 벌었다.
1911년 홀러리스는 자신의 회사를 뉴욕의 금융가에게 매각하였고 이후 매각된 회사는 다른 몇몇회사와 합쳐 컴퓨팅-태뷸러리팅-레코딩이란 회사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홓러리스는 이회사의 고문으로 일하다 1921년 은퇴하였다.
이 발명품은 이후 프로그래밍 방식의 시초가 되어 컴퓨터 개발에 활용되었고
T_C_R 은 이후 인터네셔날 - 비즈니스 머신
즉 IBM 의 모태가 되었다.